
허남문《Strata》
Artist's Note
비무장지대 내 최전방 초소(GP)에서 군 복무를 했다.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정지되어버린 이 공간의 적막은 아직도 6.25전쟁이 남긴 흔적이 그대로 남아 그때의 시간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산야에 잠들어있는 영웅들을 부모 형제들이 기다리는 그들의 조국으로 하루빨리 보내 드려야 하며,
영웅들의 가족들에게 위로와 미안함을 그리고 감사함을 함께 건네야 한다.
이 작품은 인간의 원초적 교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마음의 치유로 접근한다.
그들의 소망은 전쟁 없는 인류의 자유로운 평화를 염원할 것이다.
SPACE776 Seoul은 2026년 8월 27일부터 9월 27일까지 허남문의 개인전《STRATA》를 개최합니다.
전시 제목 STRATA는 지층을 의미합니다. 하나의 지층이 서로 다른 시간과 물질이
오랜 시간 쌓이고 압축되며 형성되듯, 허남문의 작업 역시 반복되는
행위와 재료의 축적을 통해 하나의 화면을 만들어냅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유화와 한지라는 서로 다른 물성을 통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표면과 깊이, 반복과 중첩,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되는 시간에 주목합니다.
허남문의 유화 작업에서 화면은 단순한 색면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2020년작 〈SPACE〉는 검정과 회색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색채 안에서 넓은 원호와 부채꼴 형태가 서로 겹쳐지며 화면을 구성합니다. 얼핏 단색에 가까워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붓이 지나간 방향과 물감의 밀도, 표면에 남겨진 미세한 결이
드러납니다. 빛을 흡수하는 검은 면과 붓질을 따라 은은하게 반사되는 부분이
교차하면서 같은 검정 안에서도 서로 다른 깊이가 발생합니다.
반복되는 곡선은 하나의 고정된 형태를 묘사하기보다 움직임이 지나간 궤적처럼
보입니다. 하나의 면이 다른 면을 부분적으로 덮고, 그 아래 있던 형태가 다시 화면의 다른 부분에서 이어집니다. 이러한 중첩은 화면에 앞과 뒤, 팽창과 수축, 회전하는
듯한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작가는 많은 색을 사용하는 대신 붓질과 밀도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회화의 표면 자체를 하나의 깊이 있는 공간으로 변화시킵니다.
한지를 이용한 〈Convergence〉 연작에서는 이러한 ‘층’의 개념이 전혀 다른
물질적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한지는 그 자체로 수많은 닥 섬유가 서로 얽히고 겹쳐져 만들어지는 재료입니다. 허남문은 한지를 단순히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바탕으로
사용하지 않고, 화면을 구성하는 물질이자 조형적 요소로 다룹니다.
가로로 길게 펼쳐지는 〈Convergence 201710〉과 〈Convergence 201711〉에서는 한지의 미세한 색과 질감의 차이, 종이가 만나는 경계와 반복되는 흐름이 화면 전체를 가로지릅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연속된 장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는 서로 다른 결을 가진 수많은 부분들이 만나고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화 작업에서 붓질이 이전의 붓질을 덮고 다시 그 흔적을 남기며 화면을 형성한다면, 한지 작업에서는 섬유와 종이의 물리적인 중첩 자체가 화면의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얇은 한지는 다른 한지와 만나면서 새로운 두께와 경계를 만들고, 각각의 층은 이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 다음 층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허남문의 유화와 한지 작업은 서로 다른 재료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조형적 태도 안에서 만납니다. 붓질과 색의 층, 종이와 섬유의 층. 작가는 반복하고
겹치고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평면 안에 시간의 흔적을 축적합니다.
“표면은 작품의 끝이 아니라, 그 아래 존재하는 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여기에서 《STRATA》는 단순히 작품의 표면이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한 화면이 완성되기까지 지나온 행위와 시간, 그리고 서로 다른
물질이 만나 형성한 관계까지 모두 하나의 ‘지층’이 됩니다. 어떤 흔적은 다음 층에
의해 가려지고, 어떤 흔적은 끝까지 남아 새로운 층의 일부가 됩니다.
허남문의 작업에서 표면은 작품의 끝이 아니라 그 아래 존재하는 시간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지층을 통해 그 장소가 지나온 시간을 읽어내듯,
그의 작품에서도 붓의 움직임과 물감의 밀도, 한지의 결 그리고 겹쳐진 경계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화면 안에 축적된 서로 다른 시간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화와 한지는 시각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전혀 다른 재료입니다. 그러나 하나에서는 붓질과 색의 밀도가, 다른 하나에서는 섬유와 종이의 경계가 깊이를 형성합니다. 서로 다른 물질은 ‘겹침’과 ‘축적’이라는 공통된 원리 안에서 만나며, 허남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의 구조를 드러냅니다.
SPACE776 Seoul은 《STRATA》를 통해 서로 다른 물질을 오가며 표면과 깊이의 관계를 탐구해 온 허남문의 작업을 조명하고, 물질과 행위, 시간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어떻게 축적되고 새로운 감각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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